우리가 서양으로 다시 눈을 돌려 유럽 미술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 격동의 여러 세기 동안에 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가 하는 것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면 유럽 사람들의 정신을 송두리 째 사로잡았던 형상의 문제에 대해 기독교 이외의 다른 두대 종교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7세기와 8세기에 그 이전의 모드 것을 휩쓸어 버리고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및 스페인을 정복했던 중동의 종교인 이슬람교는 이문제에 있어서 기독교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형상 제작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미술이란 쉽게 억눌러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동방의 장인들은 그 대신 문양과 형태를 통해 그들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아라베스크라고 알려진 정교하기 짝이 없는 레이스와 같은 장식을 창조해 냈다. 오늘날 우리는 오리엔트 양탄자의 풍부한 창의성과 색채, 짜임새에 있어서 균형과 조화에 대해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볼 때 미술가들의 정신을 현실세계의 사물로부터 선과 색채의 환상적 세계로 돌리게 했던 마호메트의 공로로 보아야 한다. 후기의 몇몇 이슬람교 종파는 형상의 추방이라는 문제를 그보다는 덜 엄격하게 해석했다. 14세기 이우 페르시아에서, 그리고 그 후 이슬람교 지배자의 통치 아래 있었던 인도에서 제작된 연애나 역사, 우화 등을 묘사한 삽화들은 이 나라의 미술가들이 문양의 디자인에만 국한되었던 훈련을 통해 배운 바가 매우 많았음을 보여준다. 15세기 페르시아의 연애 이야기를 요사한 달빛 빛나는 정원의 광경은 이들의 놀라운 솜씨를 증명해 주는 완벽한 예다. 그것은 마치 동화의 세계 속에 들어와 생명을 찾게 된 양탄자와 같다. 거기에는 비잔틴 미술이 그런 것처럼 실감 나는 현실 공간의 묘사가 거의 없다. 아마도 비잔틴 미술보다 더 없을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단축법도 명암효과도 인체의 구조를 암시하려는 시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초목과 인물들은 마치 색종이를 오려내어 완벽한 문양을 만들기 위해 화면 전체에 고루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 미술가가 실제 광경을 실감 나게 묘사하는 것보다 그 책에는 더 잘 어울린다. 우리는 이 삽화의 페이지를 마치 본문을 읽을 때처럼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오른쪽 구석에 팔을 포개고 서 있는 주인공으로부터 그에게 다가오는 여주인공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볼 수 있고, 거기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않고 달빛이 환한 동화 속의 정원 속에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유스럽게 노닐게 할 수가 있다.
중국에서는 미술에 대한 종교의 충격이 이보다 더 강했다. 우리는 중국인들이 매우 일찍이 청동주도의 기술에 능했으며, 고대의 청동 제기들 중 어떤 것은 그 시대가 기원전 1000년 또는 그 이상가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 이외에는 중국 미술의 기원에 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중국의 회화나 조각은 이 청동 제기들처럼 오래되지는 안았다. 1세기를 전후해서 중국에는 어딘가 이집트 풍습을 상기시켜 주는 매장풍습이 생겨났는데 그들의 무덤 벽에는 이집트 분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옛날의 생활 방식과 관습을 반영해 주는 생생한 장면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 당시에 이미 전형적인 중국 미술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들이 발견되었다. 중국 미술가들은 딱딱하고 모가 진 형태를 이집트인들보다는 덜 좋아했고 부드러운 곡선을 한층 더 좋아했다. 날뛰는 말을 묘사할때 중국 미술가는 이를 여러 개의 둥근 형태로부터 만들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국 조각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조각은 모두 이리저리 뒤틀리고 구부러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코 단단함이나 굳건함을 잃지는 않는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미술의 가치에 대해서 대 그레고리우스 교황과 비슷한 견해를 가졌던 것 같다. 그들은 미술을 아득한 옛날 요순시대의 위대한 도덕적 모범들을 상기시켜 주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내려온 옛날 두루마리 그림책 중의 하나로서, 유교 정신에 따라서 쓰여진 덕 있는 부인들의 여러 훌륭한 예를 모아 놓은 것이 있다. 그것은 4세기의 화가 고개지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여사잠도다.
그림은 한 남편이 부당하게 부인을 나무라는 장면인데, 우리들이 중국 미술을 볼 때마다 느끼는 위엄과 우아함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가정 안에서의 교훈을 목표로 한 그림인 만큼 그 제스처나 구도는 매우 명료하다. 더욱이 이 작품은 이 미술가가 운동을 묘사한다는 매우 어려운 과제를 능란하게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초기의 중국 그림에는 딱딱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물결치는 듯한 선이 화면 전체에 운동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 미술을 가장 힘 있게 자극하고 활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이와 다른 종교, 즉 불교의 영향이다. 불교의 승려들과 고행자들은 흔히 놀랄 만큼 실물 같은 느낌을 주는 조각으로 표상되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귀, 입술, 뺨의 윤곽을 이루는 곡선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곡선들이 실제의 형태를 왜곡시키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하나로 융합되어 있을 뿐이다.
불교가 중국 미술에 끼친 영향은 단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불교는 그처럼 그림에 대해 전적으로 새로운 접근방식을 도입시켜 미술가의 업적을 매우 존중하게 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냐 르네상스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국인들은 인류 사상 최초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비천한 일로 생각하지 않고 화가를 영감에 사로잡힌 시인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은 민족이었다. 동양의 종교는 올바른 명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선이란 깊은 생각과 비슷한 어떤것이다. 참선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한가지 진리에 대해 생각하고 궁리하고 마음 속에 어떤 문제를 확고하게 포착하여 이를 모든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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