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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르네상스기 귀족 저택의 공간적 분포

by 윤바다씨 2023. 12. 21.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서 큰 규모의 저택이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한다.

일찍이 중세적인 장원과 농업이라는 영토에서 벗어나면서, 자유로운 공기를 허용하는 성벽 안에서 화폐라는 새로운 권력의 자원을 축적하던 상인들은, 한자 동맹과 같은 연합체를 통해서, 그리고 원거리 무역을 통해 점차 거대한 부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은 비록 봉건적 관계, 봉건적 대지를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부의 집적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영토를, 하지만 이미 봉건제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간다. 15세기에 도시는 이미 저무는 봉건제의 외부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다.

동시에 그것은 중세를 지배한 또 하나의 세계화 구별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일찍이 교회가 상인들의 축재에 대해 퍼부은 비난은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고리대와 같은 축재의 또 한수단은 물론, 이자 자체에 대해서도, 신의 시간을 훔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금지하는 여러 공의회의 조치들을 통해 실질적으로 행해졌으며, 이자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환어음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난과 금지가 행해진 바 있다.

영주들과 달리 교회는 도시의 내부에 들어갔으며, 거기서 한가운데를 차지함으로써 이 봉건제의 외부에서도 교회는 그 중심지를 장악할 수 있었지만, 도시의 중앙, 교회가 자리 잡은 광장의 다른 한편에는 상인 등의 새로운 권력이 조직되던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더욱이 그 광장은 길들을 통해 다른 광장들로 연결되며, 대부분의 그런 광장들은 정기적으로, 혹은 항상적으로 시장이 만들어지는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상인과 교회 간의 팽팽한 긴장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미 권력을 장악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떤 정치조직보다 광범위한 권력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던 교회였고, 그런 만큼 상인들은 타협하면서 장사하고, 새로운 틈새를 화폐의 힘으로 채우는 조용한 전투를 택했던 셈이다.

하지만 15세기에 이르면 이미 거대한 부를 비적한 몇몇 상인 가문들의 화폐는 교회의 권력조차 유효하게 작동하기 위한 결정적인 자원이 되었고, 그것을 위해 교회의 권력 일부조차 그들에게 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이러한 조건에서 교회의 중요한 직위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부는 단지 경제만이 아니라 피렌체 전체를 지배하는 새로운 권력이 되었다. 더불어 그들은, 당시에는 물론 장인이었던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싹을 틔우기 시작했던 미술과 건축 등의 예술과 문화 전반에 대해 막대한 힘을 행사했다.

팔라초라는 궁전과도 같은 거대한 저택이 이들 최고의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후 상인이나 신흥 부르주아지는 물론 부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게 되는 시대의 상징이 된다. 그것은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도시 안에서, 거대한 네이브와 높이 솟은 탑으로 상징되던 신성한 세계의 권력과 대비되는 다른 하나의 권력이 들어섰음을 가시화하는 새로운 물리적 신체, 새로운 건축적 신체였다.

피렌체와 베네치아 등 북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흐름은, 이전에는 교회로 집중되었던 건축적 혁신의 시도들이 새로이 투여되던 또 하나의 장이었다.

투시법과 결부된 미술의 혁신과 함께, 이후 북부 유럽의 다른 나라로 확산되었던 이러한 새로운 양식의 건축에서 가장 앞서 있었던 것은 단연히 피렌체였다. 이후 로마 역시 이 새로운 흐름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또 하나의 중심이 되지만, 그 경우 교황청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에서 로마의 주된 관심사는 역시 성당이었다.

이후 바로크 건축의 발전에서 새로운 실험과 창안이 로마에서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주로 상당 건축에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세속 권력의 상징인 저택이나 궁전의 건축은 절대군주의 권력이 귀족들에 해대 전적인 지배력을 장악했던 프랑스에서 그 첨단점을 이루게 된다. 성 베드로 상당이 결코 모방될 수 없는 교회의 신성한 권력의 거대함을 상징했다면, 베르사유 궁전은 유럽의 모든 군주들이 선망하고 모방코자 했던 세속적 권력을 거대함을 상징했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르네상스 시대 저택에 대해 분석하려고 이 장의 시도는 이 책이 전체적으로 프랑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팔라초를 경우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탈리아의 팔라초

피렌체의 가장 강력한 가문이었고, 그 실질적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의 저택은 팔라초 메디치 리카르디라고 불리는 3층짜리 석조건물인데, 전반기 르네상스 건축의 거장 중 한 사람인 미켈로초에 의해 만들어졌다. 거리에 면한 두면은 각각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기하학적 형태와 규칙적으로 배열된 동일한 크기와 형태의 창, 러스티케이션으로 처리된 벽면에, 특별히 부각되는 어떤 방식이나 중심화하는 어떤 요소도 없는 , 매우 건조한 느낌마저 주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물이다.

일단 전체적으로 보면, 1층의 경우 일종의 중정인 안뜰은 포티코로 구획된 안마당을 내부에 포함하고 있는데, 이 안뜰을 둘러싸고 방들이 배열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방들은 이 안뜰과 연결된다, 즉 동선이 안뜰로 집중되고 있다. 동시에 방들 사이를 복수의 동선으로 연결하는 고리가 중첩되면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는 방들이 중정으로 중심화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방들 상호 간에 연결과 개방의 폭이 매우 크며, 이동가능한 통로가 복수여서 1층이라는 공간 전체의 통합성 또한 크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1층 전체의 평균통합성의 값으로 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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