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자체는 유럽에서도 국지적인 형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영향력은 유럽의 문화를 전체적으로 갱신하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앞서 세를리오의 그랑 페라르가 프랑스 오텔의 100년의 역사를 좌우했었다는 말은 이런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알베르티나 팔라디오, 세를리오 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건축가나 이론가들의 ㅈ가업은, 그 당시 개화되기 시작한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이탈리아라는 제한된 지역을 넘어서 감각 있고 앞서가는 예술가나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영국의 경우 지리적인 조건이나, 경제적인 조건으로 인해 그 영향의 폭은 유럽의 중심적인 나라들보다 훨씬 약했음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영향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름으로 불리는 시기는 아마도 이런 점에서 유럽 대륙의 르네상스 문화가 약간의 제체를 두고 영향력을 미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와 대륙의 르네상스기 사이에, 일정한 시간적 지체가 개재하긴 하지만 일정하게 대응시키는 것은 단지 관례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귀족 저택은 중세적인 것과 새로운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공존하던 시기였으며, 그 결과 두 가지 요소가 하나의 저택에 공존하던 시기였고, 중세적인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변형과 갱신을 시작한 시기였다. 가령 16세기 초의 워크워스 성은 홀과 그 옆의 통로가 통합의 중심을 이루면서도, 방들의 배열이나 동선의 배치가 매우 비체계적이고 산만한 중세적 실내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널리 발견되는, 전형적인 탑형 주택의 하나인 클레이포츠성은 그 시기가 1569년으로 16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지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중세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각각의 층은 거의 단일한 동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방들은 다만 그 동선의 중간중간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숨 막힐 것 같은 이 극도로 비대칭적인 공간 분포에서 그나마 숨 돌릴 여유를 제공하는 것은 각 층의 양 끝에 있는 계단들이다.
콘월에 있는 마운트 에지컴은 외부형태에서 대칭성이 약하고, 비례의 조화를 추구한 흔적이 없다는 점에서 아직 르네상스의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동선의 위상학적 분포를 보면, 홀의 중심으로 1의 깊이를 갖는 공간들이 연결되고 거기에 다른 방들이 고리를 이루면서 연결되어 베네치아 팔라초나 팔라초 메디치 리카르디의 1층과 유사한 형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홀의 통합도와 응집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홀의 중심성이나 고리형태로 분배된 동선이야 다른 중세 주택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그것이 홀을 중심으로 부채형의 형상을 이룸으로써 동선의 흐름이 정돈되고 있다. 반면 외부공간의 통합도나 응집도는 모두 평균보다 많이 작다.
발보로 홀에서 동선의 위상학적 분포 역시 에지컴과 유사하게 부채형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다만 홀을 대신해 통로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리들의 연결이 원환적인 형태를 취한다는 점, 그것을 넘어 더 깊이 들어가는 방이 외부공간 말고는 없다는 점, 홀은 그 고리 위의 한 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한편 홀의 통합성은 중심에 있는 통로를 제외하고는 가장 크며, 반대로 외부공간은 가장 작고 다른 공간들의 군으로부터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외부공간의 통합성이 이처럼 작은 것은 다른 나라의 이 시기 저택들과 매우 다른 특징인데, 영국의 엘리자베스기 컨트리하우스에서는 대부분 공통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채형의 이런 형상이 이 시기 영국의 컨트리 하우스에 공통된 것이 아니다. 가령 도딩턴 홀은 나뭇가지를 형상으로 분기하며 고리를 이루는 동선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무형의 형상에서 통합도와 응집도는 보통 동선의 가지들이 분기하는 분기점들에서 크게 마련이다. 이 집의 경우 그것은 모두 홀과 통로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 역시 나무형 분포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홀의 통합성과 응집성은 매우 큰 편이다. 반면 외부공간의 통합성은 모든 공간 가운데 가장 작다.
하드윅 홀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가장 유능하고 중요한 건축가였던 로버트 스미스슨이 만든 것이다. 그 건물의 평면을 보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홀의 세로축을 중심으로 좌우로 형태상의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건물 전체로 가로축을 중심으로 상하 또한 대략적으로 형태적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는 분명히 르네상스 건축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동시에 르네상스의 건축적 질서로는 환원될 수 없는 명쾌하지 못하고 약간 혼돈스러운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정방형에 대한 선호도 없으며, 상하좌우 모두 외부의 윤곽선만으로 대칭성은 제한되어 평면배치에서 대칭성을 정확히 발견하기는 힘들며, 방들의 배열은 불규칙적이다. 외부의 디테일에서도 이런 절충적인 양상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층간을 구별하는 엔타블러처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매우 좁아서 그 자체로 독자적인 형태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창문은 고전적인 이디큘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차라리 후기 고딕의 요소가 강하다.
창문의 크기 역시 르네상스적인 조화화 비례와는 거리가 멀고 르네상스식 기둥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절충주의적 특징은 그가 지은 거의 모든 건물들에 공통된다.
건물은 3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의 중심에는 2층으로까지 밀려 올라간 커다란 홀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위를 서비스 공간이 에워싸고 있다. 홀은 동선을 모으지 않으며, 그렇다고 홀로 모이는 동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통로를 따로 만들어 둔 것도 아니다.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의 오텔 (0) | 2023.12.21 |
---|---|
르네상스기 귀족 저택의 공간적 분포 (0) | 2023.12.21 |
주거공간의 혼성성 (0) | 2023.12.21 |
공간 개념과 연구방법 (0) | 2023.12.21 |
공간의 사회학 (0) | 202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