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저택은 보통 몇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팔레, 오텔, 메종 등이 그것인데,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에 따르면 팔레가 보통 왕이나 왕족의 저택에 대해 사용하는 이름이라면, 오텔은 고위 궁정 귀족의 저택에 대해 사용했고, 메종은 부르주아지의 집에 대해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팔레라는 말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왕족 이외의 집에 붙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텔은 팔레를 그 모델로 하고 있었으며, 18세기말과 19세기에 지어진 부르주아지의 집들 역시 귀족들의 오텔을 모델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세 종류의 저택들 사이에 일정한 동족성이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부르주아지의 저택은 궁정 귀족들의 생활양식이나 윤리와는 전혀 다른 그들의 생활양식 및 윤리로 인해 궁정적인 저택들과 적지 않은 불연속성을 보여주지만, 귀족들이 지배하는 궁정사회에 속해 있었으며, 그 안에서 출세의 길을 모색해야 했기에, 적어도 18세기까지는 궁정 귀족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쫓아가려 애를 썼다. 그런 점에서 오텔이란 말은 프랑스 지배계급, 특히 귀족적인 지배계급의 대저택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일종의 환유적 용어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의 오텔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데니스의 연구에 따르면 중세 오텔로 남아있는 것은 오텔 드 상스와 오텔 드 클뤼니 두 개뿐이라고 한다.
오텔 드 상스의 평면은 위상학적 다이어그램에서 보듯이 중정으로 대부분의 공간이 집중되어 있다. 중정의 통합성과 응집성은 극히 높은 값을 갖고 있다. 홀이나 중정이라는 하나의 중심으로 많은 방들이 집중되는 이런 양상은 중세의 저택에 일반적인 것인데, 여기서는 그 정도가 매우 강한 편이다. 또한 홀의 통합도 역시 중정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값을 갖고 있다.
외부 공간의 경우 통합도가 가장 큰 부류에 속한다. 방들이 전체적으로 중정과 홀, 외부공간을 중심으로 몰려있는 셈이다. 이것은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강하게 통합되어 있으며, 동선 역시 외부와 내부 공간 사이에서 포괄적으로 분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방들은 모두 동선의 끝점에 이치하고 있어서 응집도가 매우 작다. 그러나 통합도는 평균을 약간 하회하는 방이 하나, 평균보다 큰방이 두 개로 ,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인 세를리오가 1544~1546년 사이에 퐁텐블로에 지은 오텔 드 페라르는 보통 르그랑 페라르로 불리는데, 이후 1세기 동안 오텔 건축의 표준적 형태를 수립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 건물의 외부형태는 고전적인 엔타블러처와 이디큘을 이용해 안정과 조화를 추구하는 르네상스적 비례와 대칭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건물의 평면 또한 베스티뷸에서 문을 잇는 중심축을 기준으로 기하학적 대칭을 이루고 있다. 중정은 건물로 3면을 둘러싸고, 외부와 내부를 구별하는 벽으로 다른 한 면을 둘러싸고 있어서, 보통 따로 벽이 없이 건물로 네 벽을 대신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팔라초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 양옆으로 또 다른 중정과 서비스 중정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외부공간과 연결되는 동선이 복수적임을 보여준다, 또한 건물의 뒤쪽올 베스티뷸과 두 개의 방의 문이 외부로 나 있어서, 외부로 통하는 동선은 모두 6개나 된다. 이는 외부공간의 동선 응집도가 매우 높으리라는 것을 시사하는데, 실제로 계산된 값은 매우 큰 값이다. 이는 방들의 분포를 강력하게 중심화하고 있는 중정의 통합도와 더불어 가장 높은 값이다. 따라서 건물 전체의 공간적 분포에서 외부공간은 매우 중심적 인위상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다른 중세의 저택과 마찬가지로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근접성과 소통성은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중앙의 주 중정은 세 부분으로 나뉜 본채를 연결하는 중심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응집도와 통합도가 모두 모든 공간 가운데 가장 높다 이 또한 본 중정과 더불어 공간적 분포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개의 중정이 모두 다 공간적 분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홀 대신에 중정이 공간적 분포의 중심이 된다는 프랑스적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중정이 홀에 비해 외부공간에 좀 더 가깝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실내의 홀이 중심을 이루는 영국과 비교해서 프랑스의 중세 저택은 외부공간과의 근접성이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편 팔라초 메디치 리카르디에서처럼 이 오텔에서도 방의 용법과 관련해 일정한 분화가 나타난다. 홀과 내실, 대시길, 카비네 등의 명칭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명칭의 분화가 반드시 실질적인 기능과 용법상의 분화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더불어 17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방의 기능은 다가적이었으며, 그 안에서 매우 이질적인 활동이 뒤섞여 진행되었던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지적을 추가해 두자.
방들의 이러한 기초적인 분화는 16세기 후반이 도면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더불어 건축이론에 대한 책을 많이 남겼던 건축가 뒤 세르소가 1560년 경에 쓴 책 작은집들에 있는 오텔의 평면도는 방들이 다른 부속공간들과 더불어 일정한 단위를 이루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귀족 저택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가인 스미스슨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이 도면에서 우리는 의상실이 내실의 부속공간으로 함께 묶여 붙어 다니기 시작하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거주단위의 독립은 이후 내부공간 건축의 발전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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